나 늙어지면.....
2007. 1. 15. 18:41ㆍ마음이 가는 시들
나 늙어지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...
가능하다면 꽃밭이 있고
가까운 거리에 숲이 있으면 좋겠어...
개울 물 소리 졸졸거리면 더 좋을 거야.
잠 없는 난.. 당신 간지럽혀 깨워
아직 안개 걷히지 않은 아침 길
풀섶에 달린 이슬 담을 병을 들고 산책해야지...
삐걱거리는 허리 쭈욱 펴 보이며
내가 당신 하나.. 두울.. 체조시킬 거야...
햇살이 조금 퍼지기 시작하겠지...
우리의 가는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반짝일 때
나는 당신의 이마에 오래 입맞춤하고 싶어...
사람들이 봐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.
아주 부드러운 죽으로
우리의 아침 식사를 준비할 거야...
이를테면 쇠고기 꼭꼭 다져넣고
파릇한 야채 띄워 야채죽으로 하지
깔깔한 입 안이 솜사탕 문 듯 할 거야...
이때 나직히 모짜르트를 울려 놓아야지
아주 연한 헤이즐넛을 내리고
꽃무늬 박힌 찻잔 두 개에 가득 담아...
잉크 냄새가 막 나는 신문을 볼 거야.
코에 걸린 안경 너머 당신의 눈빛을 읽겠지...
눈을 감고 다가가야지..
서툴지 않게 당신 코와 맞닿을 수 있어...
강아지처럼 부벼 볼 거야.
그래 보고 싶었거든...
해가 높이 오르고
창 깊숙이 들던 햇빛 물러 설 즈음...
당신의 무릎을 베고
오래오래 낮잠도 자야지
아이처럼 자장가도 부탁해 볼까...?
어쩌면 그 때는
창 밖의 많은 것들
세상의 분주한 것들
우리를 닮아 아주 조용하고
아주 평화로울 거야...
나 늙어지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
당신의 굽은 등에 기대 울고 싶어
장작불 같던 가슴...
그 불씨 사그러들게 하느라 참 힘들었노라
이별이 무서워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노라
사랑하기 너무 벅찬 그 때
나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말할 거야...
겨울엔.. 백화점에 가서
당신의 마른 가슴 덮어줄 스웨터를 살거야...
잿빛 모자 두 개 사서 하나씩 쓰고
강변 찻집으로 나가 볼 거야
눈이 내릴까...
봄엔.. 당신 목에 겨자빛 실크 스카프 메고
나 연베이지빛 점퍼 입고
이른 아침 조조 영화를 보러갈까...?
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같은...
가을엔.. 희끗한 머리 곱게 빗고
보온병에 헤이즐넛을 담아 들고
낙엽 밟으러 가야지...
저 벤치에 앉아 사진 한번 찍을까
곱게 판넬하여 창가에 걸어두어야지...
그리고.. 그리고..
서점에 가는 거야.
책을 한아름 사서 들고
서재로 가는 거야.
나 늙어지면 그렇게 그렇게
당신과 살아보고 싶어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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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말 아름답게 살며 아름답게 늙어가게 하고 싶은 얘기다. ^^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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